쭈그러진 영혼 위로 비치는 빛 : 이제야 비로소 흐르기로 했다
어느덧 내 인생의 계절도 해 저문 저녁 어스름 앞에 서 있는 듯하다.
요즘의 나는 지독히도 무력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허무함이 무의식 밑바닥에서부터 차올라 나를 잠식하곤 했다.
거울 속의 나는 평생을 타오르는 태양(丙火)처럼 누군가를 비추고 살았지만,
정작 그 열기에 속이 까맣게 타버린, 쭈그러진 영혼일 뿐이었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내 몫의 책임이라는 관성(官星)을 짊어지고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 책임감은 스스로를 옥죄는 감옥이었고,
남을 비추느라 정작 나 자신의 어둠은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근 우리 집 창가로 아주 환하고 밝은 빛이 들어왔다.
딸아이가 고단했던 인연을 정리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던 날, 그 빛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들이쳤다.
그 빛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아, 이제 어둠이 걷히고 있구나. 나를 가두고 있던 비구름이 드디어 물러가고 있구나."
그래서 나는 이제 결심했다.
무언가 본질을 찾기 위해 자꾸만 안으로 파고들던 고통스러운 질문들을 멈추기로 했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거창한 물음표 대신, 오늘 하루의 편안한 쉼표 하나를 선택하기로 했다.
이제는 물 흐르듯, 아무것도 나를 옥죄는 것 없이 그저 흐르도록 나를 내버려 두려 한다.
하고 싶지 않으면 아무런 죄책감 없이 하지 않을 것이다.
친구도, 가족도, 그 누구에게도 연락하고 싶지 않다면 그 침묵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것이다.
그것은 고립이 아니라, 타인에게 쏟아부었던 에너지를 오롯이 나에게로 돌려주는 성스러운 은둔이다.
오늘 읽은 글자가 내일 기억나지 않아도, 저녁에 세운 계획을 밤사이에 포기하게 되더라도
나는 나를 다그치지 않을 것이다.
지식은 잊혀도 그 지혜의 '단내'는 내 영혼에 스며들 것이며, 포기는 곧 내 몸의 속도에 맞추는 배려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어리석고 부끄러운 내 모습이 불쑥 떠오를 때면,
이제는 고개를 돌리는 대신 환하게 웃어주려 한다.
"수미야, 그래도 잘했어. 참 잘 버텼어."라고 나를 다독여주는 여유로운 내가 되고 싶다.
인생은 무언가를 더 채우는 과정이 아니라, 나라는 에너지를 세상에 다 흩뿌리고 다시 무(無)로 돌아가는 순환이다.
쭈그러진 영혼은 부끄러운 흔적이 아니라, 내가 이 생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치열하게 타올랐다는 고귀한 훈장이다.
이제 나는 그 흔적들을 곰씹으며,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단내를 음미하며 살 것이다.
허리가 조금 아프면 누워 있고, 마음이 허하면 그 허함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렇게 비로소 자유로운 태양으로 저물어 갈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빛나는 존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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